철학세계2013. 2. 10. 01:01

우리의 삶은 우리 것이 아니다.
자궁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의존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우리가 죄를 범하고 선을 베풀 때마다 새로운 미래가 태어난다.

존재란 지각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존재들의 눈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불멸한 삶의 본질은 우리의 말과 행동들이 모든 시간에 걸쳐 자신들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입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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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세계2011. 7. 19. 00:49
이 세계는 물질 주도의 세계다.
내가 추측하는 반물질은 바로 관념이다.
즉, 물질의 반대는 관념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뒤집으면 관념 주도의 세계가 된다.
우리 물질 세계에서도 정신과 같은 관념이 있듯이
반대편 관념 주도의 세계에서도 관념으로 둘러싸인 물질이 존재할 것이다.
이것은 서로 파라독스 개념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서로 회전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유사할까나?)
아마도 우리 세계에서 죽음이나 빅뱅, 블랙홀 등이이 이러한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통로일지 모른다.
하나의 관념은 하나의 물질을 define할 수 있다.
물질 주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관념주도 세계의 여러 관념들 공유 되고 있는 관념들이 뒤집어져서 물질로 변화하여 물질 주도 세상에서 같은 차원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더 독특한 것은 생명체이다.
생명체는 관념 덩어리가 물질에 갇힌 존재이다.
물질 주도 세상내 작은 관념 주도 세상이라고나 할까나?
어쩌면 관념 주도 세상을 물질 주도 세상의 잣대로 이해하려 든다면 정말로 어리석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생명체 특히 인간에게는 관념 주도를 조금이나마 가능케 하는 언어라는
도구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를 통하여 관념 주도 세상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이것이 상상이고 꿈인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어쩌면 관념 주도 세상으로 가는 길일지 모른다.
관념 주도 세상에서는 물질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 관념에는 질량이 없기 때문이다. 즉, 가시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관념의 세계에도 우리 생명체(물질에 갇힌 관념)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관념에 갇힌 물질이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신?일지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려 들지 말라!

우리는 같은 관념들이 연결되어 뒤집혀 물질화 되어 동 시대의 동 차원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길가의 돌멩이도 관념을 소유하고 있다.
단지 우리는 돌멩이와 관념 통신을 할 도구가 부족한 것이고, 물질 주도 세상에 사는
까닭에 돌멩이를 시각적 과학적 실증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돌멩이는 돌멩이 인 것이다.

우리 세상 반대편 관념 세상에서는 우리들을 포함한 이 우주는 모두다 통해 있을 것이다.

따라서...동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같은 뿌리이고, 그러므로 사랑해야 한다.

                                                                     - Hyper Mind 박정기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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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세계2011. 2. 5. 20:32
우주는 대단히 넓다.
공기가 오염이 되어 잘 안보이는 것이지...맑은 곳의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다.
밤 하늘의 별들은 모레알 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은하와의 거리가 250만 광년이라고 한다. 게다가 지금 보고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모습은 250만년전의 안드로메다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1만년도 안된다. 내가 매우 잘 산다고 해도 100살도 살기 힘들다.

빛의 속도로 250만년을 달려야 겨우 가장 가까운 다른 은하계에 도 달할 수 있다니!
정말 우주는 광활하다.
우리가 현대 과학으로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빛의 속도보다 월등히 느린 우주선으로 인간을 태워 동면시켜 이동시킨다고 해도
다른 은하계는 커녕 주변의 다른 행성에도 우주선을 보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가장 가까운 행성인 4.3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행성까지 우주선을 타고 간다고 해도
11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주가 넓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생각해 본다....

서울의 어느 공원의 나무 밑에 개미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개미 똑똑하여 지구 반대편에 뉴욕이라는 도시에 아주 좋은 공원이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자신의 발걸음으로 기어서 대륙을 지나 바다를 건너서 뉴욕의 공원에 갈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해 봤더니 중간에 바다는 어떻게 건너며? 계절이 바뀌면 추위는 어떻게 하며? 자신의 일생을 다해서 기어가도 도저히 불가능한 이동으로 답이 안나오는 것이다.

그런데....어느날....

박정기라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공원에서 개미를 1마리 잡아서 유리병에 흙과 함께 약간의 빵조각을 넣어서 그 병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간 것이다. 박정기는 그 개미가 든 병을 들고 뉴욕의 어느 공원에 도착하여 개미를 공원에 풀어주었다. 개미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추정되었던 일이 현실에서 기적처럼 일어난 것이다. 물론 확률은 매우 매우 희박하지만 그 기적같은 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인류는 아직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단순 계산만 해 보면... 가까운 은하계는 커녕 가장 가까운 행성까지도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도 우리가 모르는 기적같은 변수는 존재할 것이다. 사람이 개미를 잡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 듯이 또는 태풍이 불어 제트기류에 날려 다른 대륙으로 개미가 날아가 듯이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변수가 우리 인류를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 시킬 수 있는 확률은 존재하는 것이다.

갑짜기 우리 태양계에 블랙홀 폭풍이 불어온다. 블랙홀 폭풍은 블랙홀에서 생성되는 시공간 왜곡 폭풍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Domain을 왜곡시켜 버린다. 순간 시공간이 왜곡되어 250만년의 시간이 1g의 질량으로 바뛰었다가 다시 다른 위치에서 환원 될 수도 있다. 이때 Domain 보존의 법칙이 작용하여 모든 사물이 그대로 보존되고 위치만 바뀔 수도 있다고 가정하자. 물론 이러한 가정은 박정기 혼자의 공상이다. 아뭏든 블랙홀 폭풍에 우리 은하계에 존재했던 태양계를 다른 은하계의 태양계로 이동시켜 버린 것이다. 어찌되었던 서울 개미가 뉴욕에 가듯이 우리 지구가 다른 은하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인류는 느껴봐야 5감...잘 느껴봐야 6감정도로 세상을 인지한다.

우주엔 우리가 보유하지 못한 감각도 많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쌓은 경험과 지식, 느낀 감각을 토대로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진실과의 괴리는 상당히 많이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틀은 항상 깨질 수 있다고 가정하고 상상해야 한다.

1초는 1초의 시간이 아니다. 1m는 1m의 거리가 아니다. 외계인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다. 외계 우주선은 접시모양이 아니다. 생명체에는 반드시 탄소, 인 등이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죽음이 블랙홀일 수도 있다. 재수가 좋아서 죽었다가 깨어 났더니 다른 별에서 돌멩이 같은 생명체로 변환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Define하고 기준을 잡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여기서 박정기는 새로운 철학 이론을 내 놓는다.

세상은 감각에 의한 Define과 기준잡기로 탄생되고, Memory로 영속될 뿐이다.

                                                                                                     - 박정기 -

우리는 안보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실증적 감각인 시각에 너무 의존한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생각(Thinking)도 감각이라고 본다.

생각하면 실존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날아가는 연필을 생각하면 날아가는 연필은 실존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특히 다른 사람들이 더욱더 공감해 주면 더욱더 실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감하는 자들에게)

결국 나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나만의 Memory(기억, 경험)인 것이다.
모든 만물에서 Memory 즉, 그들만의 경험을 제거하면 모든 만물은 같은 존재가 된다.

왜 돌멩이는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돌멩이도 그들만의 경험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느길 감각 없어 보일 따름이지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포가 DNA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감각과 다른 사물들이 제 각각 느끼는 감각간의 단절에서 Memory의 공유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느끼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고 찰라의 시점에서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나는 안드로메다에 갈 수 있다. How? Thinking으로...
상상은 허구인가? 허구를 실제로 Define하면 허구가 실제가 된다.
나의 상상을 허구와 같은 공상이라고 무시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더 허구일 수도 있다.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자. 초자연 우주를 느끼자.
초자연에서 우리는 함께 숨쉬며 함께 느낄 때 우리는 Union 인 것이다.

따라서 우주는 넓지만 가깝다.

                                                                                     - 박정기의 생각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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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세계2010. 2. 2. 00:33

정신이 없으면 우주는 존재할 수 없고, 정신은 그것이 인식하는 대상을 실제로 만들어낸다.

                                                                                     - 프레드 앨런 울프 박사 -

Posted by HyperMind
철학세계2009. 1. 18. 18:54
* 공각기동대 2.0 리뉴얼

http://blog.naver.com/ghost0221/60060084999

위 블로거가 잘 정리를 한것 같다.

특히,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 생명에 대한 성찰이 나온다.

생명이란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접점과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은 오직 기억으로 인해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과 동의어라고 해도 인간은 기억에 의해 살아간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의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좀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인간이 인간으로 한정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환상일지라도 자신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억인 것이다.
기억은 우주적으로 볼때 사소하지만, 적어도 인식의 주체로서 나에게는 우주와 같은 것이다.
메트릭스에서 의사체험이 마치 현실이 아닌 듯 꿈의 세계로 보여지지만,
깨달음을 통해 인식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자아 차원에서는 그것은 완벽한 현실이다.

따라서, 죽을 때 소멸되는 나의 기억...
나를 나로서 indentity를 만들어주는 핵심인 나의 기억...
불로초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나의 기억을 Back up하여 유전자 처럼 다른 개체에 남길 수(Restore) 있다면...
그것이 영원히 사는 불로초가 되는 것이다.

자아에 있어서 복제 개념의 백업은 있을 수 없다.
왜냐?
동시에 같은 자아가 2개 이상일 수는 없다.
쉽게 설명해서 만약 나의 기억을 백업하여 2개의 개체에 리스토어 했다고 가정하면,
2개의 개체가 active 되는 순간 서로 다른 indentity를 갖게되는 것이다. (결국 다른 자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active되는 순간 2개체가 서로 접하는 정보(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텔레파시...
만약, 2개의 개체를 상위 개념에서 통합하여, 2개의 개체를 완벽하게 감각기관으로서 통합한다면
2개의 개체는 상위 개념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해지면, 떨어져있는 2개체(두사람)이 시공을 초월하여 통신할 수 있고,
경험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 과학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것이 가능해지면, 텔레파시가 되는 것이다.

현실 세계(내가 살고있는 세계)에서는
인식의 주체인 자아 단계에서는 자아로서 유일화될 수 있는 기억이란 사소하여 개체를 뛰어 넘어 통합될 수 없다.
통합될 수 있는 개념은 형이상학의 가치들만이 통합이 가능하다.
이것이 로고스이며, 이것이 신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형이상학의 세계에 비추어 볼때...
우리네 인간의 기억이 너무 사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나에겐 소중한 기억들...
이것을 버리고, 최소한의 종의 생존을 위한 정보만을 전수시킨 현존하는 최고의 유전자 시스템...

(공각기동대 맨마지막에서 던진 한마디 대사) 네트는 광대해... 
 
곧, 우주는 광대하고... 광대한 우주의 순환속의 찰나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찰나에 융합으로 발생하여, 자연 소멸하는 매우 미약한 기억의 존재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기억(Ghost)은 나에게 소중하며, 이러한 가치는 나에게 있어서 영원한 것이다.

 
Posted by HyperMind
철학세계2008. 12. 5. 00:39
* Cocreation : 상호창조론
   ->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함과 동시에 이 세계가 신을 창조했다.

즉, 신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세계와 함께하는 것이다.

* 현재의 신 God(하나님)에 대한 왜곡
1) 유대교의 예언자를 닮아갔다.
2) 로마의 황제의 모습을 닮아갔다.
3) 아리스토텔레스 주장이후 불변의 원리로서의 모습을 닮아갔다.

-> 신은 하늘에 계신 것도 아니요,
     알렌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선교한 이후에 생긴것도 아니요,
     신은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요,
     신은 죽은 후에 심판하는 자도 아니요,
     신은 미래를 아는 예언자도 아니요,
     신은 우리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 신은 우리(이세상, 이우주)와 함께 탄생하여 공존하는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같은 존재이다.

오히려 파라독스(Paradox)와 유사하다.

태초 : 무(공집합)에서 유(우주:전체집합)를 창조한다.

태초에 무(공집합)은 완벽한 무(공집합)가 아니다.
Why? ->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유(전체집합)은 완벽한 유(전체집합)이 아니다.
Why? ->전체집합에는 공집합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포함하는 순간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는 God 신이라고 할 수 있고, 유는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Cocreation 관계에 있기 때문에...
바꾸어, 유를 God 신이라고 할 수 있고, 아것도 없는 무를 사람을 포함한 만물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하이델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와도 통한다.

질량과 위치정보는 동시에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위치를 고정하면 질량이 무한데가 되고, 질량을 고정하면 변위가 무한데가 된다.

우리는 고정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찰나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순간으로 만물을 해석하므로, 순간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순을 피해, 논리적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논리의 한계이며, 완벽한 논리를 추구하면 결국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어 비논리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하지 않은것, 비논리를 포함하는 더 큰틀(거시적 Scope)에서 모순을 인정하고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이해 한다면, 노자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신을 신이라 규정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신이 아니요.
나를 나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나 = 신 = 우주    모두  지금 현재 순간을 같이 하는 포괄적 같은 존재로 보아야 한다.

완벽에 도달하면 그것은 더이상 완벽이 아니요,
죽음에 도달하면 그것은 더이상 죽음이 아니다.

세계의 종교(기독교,이슬람교,불교,힌두교)는 모두 편협하여 믿을 수 없고,
여기까지가 생각하는 박정기가 공부하여 깨달은 진리가 아닌 진리이다.


Posted by HyperMind
철학세계2008. 8. 6. 14:47

<1> 시간 (Time)



1.  과거 : 이미 결정되었음. 바꿀 수 없음. 선택의 여지 : 0

2.  미래 : 수많은 길이 있음. 상상으로 수많은 선택이 가능하므로 선택의 여지 : 무한대

3.  현재 : 수많은 미래의 길중 단 1가지 자신의 생각으로 선택해 나가는 것, 선택의 여지 : 단 1개


시간의 흐름 : 미래 -> 현재 -> 과거

선택의 흐름 : 무한대 가능성 -> 1가지 선택 -> 선택된 바꿀 수 없는 것 (후회 or 칭찬 평가만 가능)


* 중요한 포인트 :  미래의 무한대 가능성에 대하여 과거로 넘겨버려서 바꿀수 없는 것으로 고정시킬
                         단 1개의 무엇인가를 현재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1개를 선택해야 하는 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매사의 현재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아끼며 정성을 쏟아붓고, 아주 잘 판단해서
선택을 잘 해 나아가야 한다!!!

결론 :  현재를 사랑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서 현재에 후회 없는 최고의 선택을 하라!
Posted by HyperMind
철학세계2008. 7. 21. 17:02
Posted by HyperMind